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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요11:17~27 +
지금 여기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요11:17~27 +
모든 성경의 말씀은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 아니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이다고 딤후3:16절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소개하며 창세기 전반부(1-3장)는 창조주 하나님이 스스로 밝히는 창조에 대한 자기 선포이십니다. 창조의 하나님은 성경의 첫 말을‘태초’라는 말로 시작한데. 세상은 시간 안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즉 창조 이전에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시간의 주관자요 창조자이며. 창조주 하나님만이 시간의 주관자이므로 하나님 이외 피조세계의 미래를 정확히 내다볼 수 있는 피조물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함부로 단정적 어조로 미래와 종말을 예언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하며.
물질과 시간은 창조된 것이므로 세상은 우리 사람의 육체처럼 유한하며 끝이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 사상들이 우주와 세계는 처음도 없고 끝도 없다는 순환적 시간관을 가진데 비해, 기독교가 직선적 시간관을 가지는 이유입니다. 시간을 보는 관점이 시간의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은 전혀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벧후 3: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공간과 물질은 이렇게 시간 속에서 비로소 삼위일체적 완성된 세상을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시작되었습니다.
1. 우리는 신론을 알고. 성경이 말하는 신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유일신입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다신론입니다. 하늘의 신, 땅의 신, 바다의 신, 태양의 신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하나님은 유일신입니다. 신6:4~5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신론도 범신론도 다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확한 하나님 이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초월적이며 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저 밖에도 계시고 내 안에도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신론은 아닌데 신앙생활을 이신론처럼 하나님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시139:7~10 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하나님은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고,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고, 바다 끝에 거주할지라도 거기 계시며 나를 인도시고 나를 붙드시는 분이라는 노래입니다.
2. 하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창27장에서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창25:23 이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처럼 거짓과 술수로, 다른 사람을 속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고 야곱은 형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해갈 때 야곱은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지므로 광야에서 혼자 밤을 맞이하게 됩니다. 강도의 위협, 맹수의 위협, 혼자라는 외로움,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야곱은 무서운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 하나님은 야곱을 홀로두지 않으시고 그 밤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꿈에 본즉 하늘과 닿은 사닥다리가 있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사가 야곱을 지키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한 말이 이것입니다. 창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 나와 함께하시는 분이신데 내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데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고 두려워하고 걱정 가운데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 가운데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3. 오늘 본문 요11장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베다니에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나사로의 집에서 쉬어 가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단에 계셨습니다. 나사로는 병이 들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나사로가 병이 들자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틀이나 더 유하시고 베다니 나사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나사로는 이미 죽고 장사하여 무덤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마르다가 나와 맞이하며 말합니다. 요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나아가 말하였습니다. 요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얼핏 듣기에는 믿음이 좋아 보입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의 병을 고치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니계신 곳이 없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지만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시고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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