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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행복하여라. 마5:3-12 +
너는 행복하여라. 마5:3-12 +
팔복의 첫 번째는‘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로 출발합니다. 여기서‘가난한 자’로 번역된 말이 헬라어로 ‘프토코스’입니다. 이 말은 극빈자 산산이 부서진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천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은 물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음과 영혼이 가난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그를 의지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란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자아가 부서진 상태를 의미하며 자신의 존재 한계와 불가능을 깨달은 말합니다. 이 땅을 살면서 자신이 가진 물질로도, 명예로도, 사람으로도, 권세로도, 행복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심령의 가난은 내가 무엇을 행함으로 행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 자신에 대하여 깊은 영혼의 탄식을 하는 상태이며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무(無) 사상이나 유교에서 말하는 덕(德)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1. 기독교는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어서 인간을 향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리로부터 인간에게로 내려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신 다음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의 자리로 올라가시고 인간은 그분이 해결하고 이루어 놓으신 것을 누리며 사는 것인데. 이것은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행복입니다. 다른 종교나 학문은 모두 아래로부터 위로의 노력을 추구합니다. 즉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선행, 인간의 연구, 인간의 도덕으로 신을 향해 올라가는 고행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을 보는 관점에서도 종교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인간 자체에 신적 기대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죄인으로 스스로 죄와 그 결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에게 내재된 신성을 개발하면 신과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 과연 몇 명이나 천국에 갈수 있을까요.
2.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의 시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미 보장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는 생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사는 생활을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의 시초라고 마태복음 5장은 복의 시초를 가르쳐 줍니다. 마 5: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원어 성경에는 이 문장이 도치되어서(차례나 위치 따위가 뒤바뀜) “행복하여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성경은 “자기 자신이 영적으로 가난한 존재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시초는 행복을 비는 데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행복을 누리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은 성경은 행복을 두 가지로 다른 차원에서 구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문화적 행복입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문화생활을 할 때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에게 필요한 여건을 미리 마련해 놓으셨음을 가르쳐 줍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난 후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창1:28절“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일러 주셨는데. 이 문화적 행복을 성경은 [비오스]라고 합니다. [비오스]는 [목숨]을 의미한데. 이것은 인간을 영과 혼과 육체로 구분해서 생각할 때 혼, 즉 정신과 육체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세상 문화 속에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을 성경은 [비오스]라고 하는데 그러나 또한 성경은 [비오스]가 느끼는 행복은 없어지는 때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3. 영적인 사람은 환경과 위치와 소유를 초월하여 행복을 누립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소유와 나이를 초월하여 행복하고, 핍박을 받아도 기뻐할 수 있는 행복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똑같은 인간을 놓고 예수께서는 세상적인 행복,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향해서는 [비오스]라고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을 보고는 [소오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영적인 행복 [소오마]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모두“너는 행복하여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가난한 것을 알고 있는 자라고 하나님은 정확하게 못 박아 놓으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영적으로 가난한 것을 아는 사람, 인간은 영적인 존재인 것을 아는 사람, 그리고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자 몸부림치며 갈급해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영적 부요함을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적으로 부유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가난한 것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과 똑같은 동의어입니다. 영적 가난을 알고 영적으로 부유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만을 최후의 방법으로, 최후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은 영적으로 부유해지고, 그리고 그렇게 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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