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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빛 마5:13-19 +
소금과 빛 마5:13-19 +
히브리인들은 기이하게도 회화나 조각 등의 미술보다는 음악이 발달됐습니다. 즉 보는 것보다는 듣는 청각문화가 발달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며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은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데 아주 익숙해져있습니다. 신4:1“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신6:1에도“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그랬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원어로 [쉐마]입니다. 신명기27:10에“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쉐마는 복종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어이기 때문에 들으면 곧 복종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했는데 이 뜻은 믿었으면 복종해야 한다는 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말씀을 듣는 것과 따르는 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하면 대개 부패방지를 생각하지만 히브리어는 [변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18:19을 소금 언약이라고 표현했다.“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예수님이 믿는 자들로 세상의 소금이 되어 달라는 말씀은 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의 신앙의 모습이 변질되면 오히려 믿지 않는 자보다도 더 쓸 데 없는 존재가 되어 불신자만도 못하고 오히려 불신자의 발에 밟히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소금처럼 변치 않는 그 맛을 지니고 살라는 이 의미는 버림받지 마라는 뜻입니다.
신약은 바울이 기록한 데살로니가전서부터 씌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마가복음은 주후 70년 경에 씌여졌으며. 마태, 누가복음이 씌여지고 요한복음은 주후 100년경에 씌여졌습니다. 그 엄청난 시간을 사이에 두고도 제자들이 신앙을 변질시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으로 가능했을까요? 성령이 그들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성령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 예수 그리스도의 뜻, 예수 그리스도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꿈을 성경 속에 그대로 기록해 놓을 수 있었습니다.
2.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빛의 의미는 [빛난다]라는 의미보다는 [드러난다]라는 의미의 빛을 말합니다. 빛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죠. 예수님께서 믿는 우리를 향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에서 믿는 자로서의 신분을 드러내라는 의미입니다. 즉 믿는 자다운 신분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는데 이것은 “네가 만일에 어두움에 거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나와 관계를 갖기를 원한다면 자신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에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인가? 그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소금이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사명을 두고 하신 말씀이고, 우리를 빛이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신분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믿는 자의 사명은 소금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며. 믿는 자의 신분은 빛이다. 우리로 소금과 빛의 신분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께서 능력을 주셨습니다. 내가 진정 믿음을 변질하지 않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세상 속에 나아가서 어디에서라도 믿는 자로서의 신분을 드러내고 그에 합당하게 살고자 노력한다면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가 따르게 될 것입니다.
3. 입에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 입에 권세를 담아 주셔서 우리 입으로 축복하고, 우리가 입으로 평안을 빌고, 우리가 입으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는 예수의 권한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마 10:12-13“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말씀의 권세는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우리에게로 돌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입술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축복하라, 하루의 날들을 축복하라, 복음 듣는 자를 축복하고, 주님의 일과 사명을 축복하라.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축복하라. 그러면 분명히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손끝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끝을 통하여 사람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같이 손을 잡음으로 사랑과 용서를, 능력과 평화를 나누어 주라. [안수]라는 말은 [능력을 옮긴다]는 뜻입니다. 내가 손을 잡고 내게 있는 예수의 생명이 그대로 옮겨지기를 위해 기도하라. 내 손으로 하는 그 축복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나의 입과 손끝을 통해 소금처럼 변질되지 않은 나의 신앙을 빛으로 살고자 하는 나의 뜻을 이웃에게 부지런히 알리라.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생명을,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 손과 발과 입술로 증거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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