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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충만하여. 행4:29-35 +
성령이 충만하여. 행4:29-35 +
성경에서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자기의 본질을 말씀하시기 보다는 인간과의 관계성을 통하여 스스로를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표현한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왕과 백성, 목자와 양, 아버지와 아들 등 아주 다양하다. 이런 것들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과 인간은 계약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계약이란 단어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언약이다. 언약은 일방적인 의미가 다소 강하다.
2.계약이다. 계약은 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쌍방적인 의미가 강하다.
3.약속이다. 개인적인 의미가 강하며 법적인 의미는 약하고 부족하다.
성경에서 흐르고 있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계약 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쌍무적 계약 관계와 편무적 계약관계입니다. 출애굽기 19장-24장까지 나와 있는 시내산 계약, 혹은 모세에게 주신 율법은 쌍무적 관계를 합니다. “만일에 너희가 (무엇)~을 지키면 (무엇)~해 주리라”하는 식입니다. 신28:1“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그리고 [노아의 계약] 혹은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계약]은 편무적 계약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계약관계는 하나님 쪽에만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편에서만 약속의 행위를 하시겠다는 일방적인 계약관계이며. 이것을 [영원한 계약] 또는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1. 이 두 계약관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지금도 흐르고 있다,
그중 쌍무적 계약 관계는 인간 쪽에서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인간이 계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관계없이 하나님 한쪽에서만 약속하신 편무적 계약관계는 그대로 흐르고 흘러서 실현되었습니다. 쌍무적 계약 관계와 편무적 계약에서 쌍무적 계약인 시내 산 계약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편무적 계약인 아브라함에게 하신 복음의 약속은 존속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한 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하나님은 이 끊어진 이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약속에 개입시키셨습니다. 그 중 하나는 [시내 산 약속]으로 인간이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행위에 관계없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쉽게 말하면 시내산 약속은 인간으로 인해 실패하였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 흘리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인간의 구세주이심을 증거하는 한편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까지 믿음의 사람들을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로 묶어 보호하시고 마침내 그날이 오면 그를 믿는 사람들을 아버지 나라로 데려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속의 대하극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약속과 함께 성경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이것 전체를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 고백도 그것에 기초해야 하며. 분명한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분명하게 고백하지 못함으로써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2.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마16:15-16“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4:33“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이것이 우리가 전해야 할 신앙 고백입니다. 여기에서 케리그마(선포)란 말이 나온 것이다. 인간이 보기에는 분명히 한 인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청년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를 바로 만난 사람입니다. 개가 낳은 것은 강아지 입니다. 소가 낳은 것은 송아지입니다. 사람이 낳은 것은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지닌 지식으로는 인간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을 보고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이 고백을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마리아도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 속에는 그분의 능력과 이적과 권능과 지혜와 구원을 다 믿는다는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3. 예수님 안에서 보여지는 신성의 증거가 많이 있습니다.
믿음은 이성이 긍정해야 합니다. 사르밧과부, 과부의 두렙돈, 마리아의 향유옥합, 왜 이들은 이렇게 헌신 할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어떠했기에 제자들은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으며 이 사실을 증거하는 일에 왜 생명을 걸었는가? 사실 기독교는 성령이 함께하시면 우리의 이성이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고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믿어지십니까? 예수의 죽음으로 인하여 인간의 모든 죄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무조건 용서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편무적 계약관계 속에서 아무런 공로도 우리의 어떤 선한 행위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온 인류에게 적용되는 이 사실을 오직 믿기만 하면 온 인류의 죄가 사해지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늘 말씀드리지만 목사는 복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복을 받을수 있는길로 인도해야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15년을 단기 선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다니는 게 아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러 가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이 하게 하십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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