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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능력입니다.∐ 빌1:1-8 +
기쁨은 능력입니다.∐ 빌1:1-8 +
레위기나 민수기 역대상하 로마서 같은 신학은 딱딱합니다. 지루합니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신학을 개념으로 주신 이유는? "보관과 전달이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커피나 우유를 보면 끓여둔 커피는 쉽게 식고 변질됩니다. 액체 우유도 썩습니다. 반면 분말 상태의 커피나 우유는 오래 보관이 가능하고 전달도 가능합니다. 또 물만 잘 부으면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이 나옵니다. 이처럼 신앙의 영성은 "분말 영성"입니다. 딱딱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생수가 들어가면. 거기서 기막힌 감동과 맛이 나오는 것입니다. 체험의 물, 은혜의 물을 집어넣으면 뜨겁게 살아납니다. 신학에 눈물, 땀, 피가 들어가면 말씀이 살아나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지난주에 이어 먼저 우리는 기쁨을 빼앗아 가는 장애물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기쁨을 빼앗아가는 장애물을 보여주고 그 장애물을 극복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신앙을 통해서 기쁨의 장애물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처럼 보물지도이기에 "삶을 해석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1. 환경이 기쁨을 빼앗은 장애물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는 환경에 의해서 좌우 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처해있는 환경은 감옥입니다. 우울해 질 수밖에 없고 기쁨을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만 사도 바울은 그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의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어떻게 초월했을까요? 환경을 뛰어넘어 예수님 안에 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가 쓴 옥중서신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안”이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빌립보서 1:1절에도 “그리스도 예수안”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몸은 감옥에 있지만 그의 마음과 영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우리가 언제나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안이 가장 안전한 장소임을 사도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예수님 안에는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빌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바로 이것을 배웠습니다.
2. 사람이 기쁨을 빼앗는 장애물입니다.
사람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동시에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존재입니다. 사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환경보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직장동료가 이웃이, 교우가 기쁨을 빼앗아가기 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다짐하는 40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같은 민족입니다. 이유는 그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낙담시키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모든 인간관계를 초월해 기뻐하는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초월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는 것입니다. 사람은 우리가 사랑해야할 대상이지 변화시켜야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의 비극은 우리의 힘으로 사람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품은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마음을 주장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창세기에 요셉을 보십시오. 자기를 노예로 팔아버린 그 형제들을 만났을 때 그는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만약에 노예로 팔지 안했다면 나는 지금 애굽에 총리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을 깨달은 요셉은 창50:20에 이런 말을 남깁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이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람 때문에 괴롭다면 그를 사랑하십시오. 그렇게 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자유함을 얻어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3. 염려와 물질이 기쁨을 빼앗는 장애물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가장 큰 적은 염려입니다.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이 신경안정제입니다. 어느 시대보다 잘살고 편안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염려가 많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염려는 마음이 “나누이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또 목을 조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분산시키고 우리를 괴롭게 하는 괴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토록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비결을 배우는 여러분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우리의 현실이 어떠하든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염려를 하고 안 하고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염려 대신에 기도 하십시오 감옥에 갇혀서도 기쁨에 비결의 일체를 배운 사도바울에게는 옥문이 열리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기억력이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상상력입니다. 오늘의 현실과 상황에 메이지 마시고 여러분의 미래를 밝게 설계하십시오.
가난을 통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가난이 주는 경제적인 압박감을 잘 모릅니다. 경제적으로 힘들거나 파산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경제적인 압박은 마음속에 있는 기쁨들을 다 내쫓아 버리는 역할을 합니다.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압박감 때문에 기쁨을 상실합니다. 그것은 생존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물질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바울은 삶을 통해 예수님이 부요의 원천이요 풍부의 원천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풍요가, 모든 부요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예수안에 있는 바울은 부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금과 은이 없어도 예수님을 모셨다면 그 사람이 참으로 부요한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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