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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능력입니다. 빌1:1-8 +
기쁨은 능력입니다. 빌1:1-8 +
우리는 "그리스도인(Christian)"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세상의 법에 따라서 세상과 어울려 살다 보니 우리는 수많은 갈등을 겪게 되고 마음의 소원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시편 37편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믿음이 병든 증거입니다. 성경은 기뻐하라는 말이 191번 나옵니다. 잠언17:22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뻐하는 자체가 양약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동일한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흐를 때도 있고 슬픔의 눈물이 흐를 때도 있습니다. 똑같은 눈에서 슬픔과 기쁨이 함께 만납니다. 동일한 마음의 샘에서 슬픔이 솟구치기도 하고 기쁨이 솟구치기도 합니다. 이 슬픔과 기쁨이 함께 만나는 교차로가 바로 인생입니다.
1.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며 천국의 문화입니다.
기쁨의 영성은 예수님의 영성이요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표지입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며 천국의 문화입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빌립보서는 슬픈 감옥에서 보낸 기쁨의 편지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기에 가장 환희에 찬 서신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짧은 서신 속에 기쁨이라는 말이 19번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슬픈 감옥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기뻐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우울할 수 있습니다. 괴로울 수 있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고통스런 마음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그 괴로움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2. 매순간 환희에 찬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저절로 기쁨이 넘쳐나고 매일 매일 환희에 찬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설교가 끝나고 나면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즉 4명중 3명이 고뇌, 근심, 당황, 분노, 의기소침, 공포, 그리고 소외 등을 이야기하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감기처럼 찾아오는 낙심, 고뇌, 근심, 좌절, 침체, 그리고 우울한 마음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배움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믿으면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영적비결(비법)있고 그 비결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4:11-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말씀은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생의 신비를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슬픈 감옥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받아들이면 놀라운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난 중에 기뻐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신비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3. 고난 중에 우리 안에 예수님의 형상을 만들어 가십니다.
바울이 고난 중에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고통을 선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낭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 중에도 일하십니다. 고난 중에 우리 안에 예수님의 형상을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는 고난 때문에 불행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불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반응만 올바르게 하다면 고난은 얼마든지 변장된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깊은 감옥과 같은 현실로 우리를 인도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을 경험케 하시고 인생의 신비를 경험케 하십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은 감옥은 아닐지라도 어쩌면 깊은 감옥에 갇혀 있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어떤 감옥에 갇혀 있습니까? 남을 미워하는 미움이란 감옥입니까? 무서운 죄악의 습관이라는 감옥입니까? 아니면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질병이라는 감옥입니까? 인간관계의 어려운 감옥, 혹은 염려의 감옥, 또는 우울과 침체라는 감옥, 지금 어떠한 감옥에 갇혀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가장 어두운 밤에 별은 가장 밝게 빛납니다. 새벽동트기전이 가장 어두운법입니다. 새벽은 곧 옵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어두움을 통해서 새로운 일들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승리는 실패를 통해서, 치유는 자기 자신이 부서짐을 통해서, 자아의 발견은 자아를 버림으로 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깊은 시련의 강을 통과하고 있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기쁨에 비결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먼저 우리는 기쁨을 빼앗아 가는 장애물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기쁨을 빼앗아가는 장애물을 보여주고 그 장애물을 극복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도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기쁨의 장애물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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