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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룬. 신33:1~5 +
여수룬. 신33:1~5 +
사람들이 쓰는 말 가운데 환상적인 설렘을 가져다 주는 말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행복’이란 단어입니다. 행복은 모든 사람들이 듣기를 좋아하고, 갖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없이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그럼에도 이 행복의 정체성을 바르게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행복이란 말 자체가 지니고 있는 그 정체성이 너무나도 여러 가지 내용과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 광야교회의 지도자 모세를 세상에서 부르기 직전에 그를 통해 자기 백성 여수룬(이스라엘)을 향하여 신명기 33장 29절에「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불러주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이 말씀은 결코 지나가 버리는 예찬 정도나, 위로하고 달래주기 위한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여수룬이 받은 실제적 행복을 사실적으로 말해주는 무게 있고 내용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주 자신이 행복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고, 말들을 합니다. 또 인간 자신이 행복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결코 행복의 주인은 인간 자신이 아니고, 또 인간 자신이 행복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산물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인생은 하나님 자신께로부터 행복을 받아 누리는 피조물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인생들이 받아 누릴 행복의 법칙들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인생이 행복하게 되는 비결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행복의 법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산소를 마시는 호흡의 법칙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의 행복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여수룬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33장3절에「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저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 자신 편에서 이 사실을 이스라엘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열방에 공개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축복 중에 최고의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사랑을 먹을 때 행복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자식을 행복하게 합니다. 스승의 사랑이 제자를 행복하게 합니다. 친구와 선배의 사랑이 행복한 사회를 이룩하여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여수룬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죄로 인하여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인생에게는‘하나님의 사랑’‘특별한 사랑’곧‘구원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금세와 내세에서 결정적인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죄문제, 구원문제, 영생문제, 기업문제를 모조리 해결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세상 끝날까지 임마누엘의 보장을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 모든 성도(이스라엘)가 그 수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복을 좋아합니다. 또 복 받기를 좋아합니다. 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복받기를 원하는 일반적인 심리를 보더라도 결코 복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복은 하나님 창조의 선물이요, 또 언약적 선물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획적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 축복하자고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창1: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라,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하나님이 인생을 창조하실 때, 이미 복을 주시려고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복의 본질적 정체는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히 6:14절에“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축복의 신적 필연성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 축복의 약속을 그대로 받고 말았다고 그 결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3장 3절에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전 인생이 하나님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저들의 전 인생과 역사가 결정적인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통치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천지가 지음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그 손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애굽을 치신 심판의 손이요 이방 블레셋을 치신 재앙의 손이요 이방 제국 바벨론의 종말을 나타내는‘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의 손입니다
3. 주의 발아래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3장 3절 중에 다시 말하기를「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시는 가나안 땅으로 갈 때, 저희가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다 저희에게 주겠다고 신11:24, 수1:3 약속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축복의 장면들입니다. 행복한 장면들입니다. 참으로 시원하고, 밝고, 유쾌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축복입니다. 이것은 열국 중에 이스라엘(여수룬)만이 받는 행복입니다.‘주의 말씀’은 바로 여호와 자신의 음성입니다. 인격적 계시입니다. 저들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은 바로 저들의 삶과 직결하는 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119: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된 결정적인 요소는, 저들에게는 여호와의 말씀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 다윗에게 그리고 여러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들이 살고 죽는 것과 직결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분명히 여수룬입니다. 행복한 이유는 충분하고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해야 됩니다. 행복하십니까?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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