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초월한 축복Ⅲ 창26:12-1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3-06 10:59 조회1,036회 댓글0건 관련링크 목록 본문 +8-9-7환경을 초월한 축복Ⅲ 창26:12-16+ 하나님은 이삭이 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마침내 거부가 되어”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휼륭한 거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훌륭한 거부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먼저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그리고 우리의 언어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성품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아상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생활의 환경은 우리의 생각의 결과입니다. 생각이 결과를 낳습니다. 마치 거미가 자기 몸에서 나온 거미줄로 자기 집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인간도 우리생각에서 나온 생각 의 줄로 자신의 환경을 만듭니다. 어떻게? 된다, 안된 다로, 맞다 틀리다로 한다. 안한 다로 거미는 자기 꽁무니에서 나오는 줄로만 자기 집을 수 있습니다. 왜 그들에겐 그 왜의 삶의 수단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뭇가지를 사용해 서로 엮어 집을 짓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는 환경을 초월해 살 수 있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주셨으므로 우리는 천하만국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아상도 가져야합니다. 천국의 시민권자요, 후사로서의 자아상을 소유하십시오. 부정적인 자아상, 가난하고 빈곤한 자아상을 벗어버리십시오. 긍정적인 자아상, 풍성한 삶의 자아상을 소유하십시오. 어떤 자아상으로 살 것인지는 아무도 결정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자신이 결정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아상을 따라 말하고, 옷 입고, 행동하고, 돈 벌고,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거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거부와 성경이 말하는 거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거부는 단지 돈이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거부는 물질의 크기에 따라 결정됩니다. 사람의 크기가 아닌 물질의 크기입니다. 도량의 크기가 아닌 물질의 양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훌륭한 거부는 다릅니다. 깨달음이 깊은 사람을 말합니다. 깨닫지 못한 거부를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요셉을 보십시오. 모든 것을 다 잃어 던 적이 있습니다. 그가 입었던 채색옷도 빼앗겨서 짐승의 피를 묻혀 그 아버지에게 보내짐으로 사랑하는 아버지 야곱과도 생이별을 합니다. 형제의 미움을 받고 형제들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망하지 않습니다. 아니 되려 형통해져 아버지와 자기를 배신한 형제를 살립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그는 다 잃어도 하나님한분만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더욱 붙들 엇습니다. 그때 요셉은 이 땅의 누구보다도 형통한자가 됩니다. 훌륭한 거부란 삶을 초월합니다. 인격이 훌륭합니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 했지만 빈곤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은 것을 소유했지만 부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요란 소유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능력으로 측정됩니다. 줄 수 있고 베풀 수 있고 나눌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부자입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나눌 수 없고 베풀 수 없다면 그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거부가 되기 위해서 먼저 자족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존재가 넉넉한 사람은 소유로 사는 게 아니라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먼저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행복합니다. 혹이 나는 거부가 되기 위함이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존재가 넉넉한 사람은 자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후사라면 소유하지 않았어도 즐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후사이기 때문에 콧노래가 절로 납니다. 지금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즐겁습니다. 내 아버지가 만유이신데요. 넓고 큰 정원을 소유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정원 삼아 하나님을 찬양하며 행복해 할 수 있다면.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을 마치 자신이 소유한 것처럼 가꾸며 살 수 있다면 이는 부요의 조건을 갖춘 사람입니다. 존재 속에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사람이 훌륭한 거부요 또 훌륭한 거부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춘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거부로 만드십니다. 환경을 초월해 축복하십니다. 할렐루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