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선교라는 이름은 그냥 붙여진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의미를 가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선교’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조심해야 할 일은 ‘선교’는 ‘전도’와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전도’는 일반적으로 포교활동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는 활동입니다. 그러나 ‘선교’라는 말의 의미는 그 이상입니다.
보통 ‘선교’라고 하면, 해외에 나가서 하는 전도를 생각합니다.하지만 ‘선교’는 그런 좁은 의미로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선교’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분명해 집니다. ‘선교사’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 세상으로 보냄을 받아서,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선교사는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아 섬기는 성직자들과 구별되는 사람을 지칭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교초기를 살펴보면, 선교에 대한 이해는 확실해 집니다. 1884년에 이웃 나라 일본에 선교사로 와 있던 미국 감리교회 소속의 맥클레이 목사가 우리나라에 와서, 김옥균, 윤치호 등의 도움으로, 고종 황제를 만나서, 선교 윤허를 얻었습니다. 그 때 윤허 내용은 ‘교육과 의료사업’이었습니다. 전도 사업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인 1885년에 우리나라를 찾아온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목사가 선교사로 입국해 모두 전도가 아닌 교육과 의료사업을 했습니다.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분들이 이 땅에서 선교활동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분들은 분명히 선교사로 이 땅에 오셔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란 단순히 외국에 나가서 전도활동을 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선교란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펼치기 위해, 세상으로 보냄을 받는 것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임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러면 왜 죽음을 무릅쓰고 선교를 해야 할까요? 선교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근거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기록된 ‘천지창조 이야기’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피조물 곧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창세기 3장 이하에는 아벨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신 셋의 뒤를 이은 사람들도, 그리고 가인의 뒤를 이은 사람들도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 이후에, 각처로 흩어져 살게 된 셋의 후손도, 함의 후손도, 야벳의 후손도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뒤를 이은 이삭과 그의 후손도 하나님의 자녀요,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도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시편 24편 1절에 보면, 시인은 말하기를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유대민족은 이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만 하나님의 자녀요, 다른 민족은 다 저주 아래 있는 사람들로 이해했습니다. 오늘날 일부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들만 하나님의 자녀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는 우리에게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모르고, 믿지 않아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이 세상 모든 사람 앞에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선교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두 번째 근거는,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이 지은 첫 번째 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범죄 한 인간을 징계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인간을 위해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들조차도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신 일입니다. 요나서4:10-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 하였고, 재배도 아니 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이방인조차도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유대민족은 이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다른 민족은 다 징계를 받는 사람들로 이해했습니다.오늘날 일부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들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모르고, 믿지 않아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이 세상 모든 사람 앞에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선교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펼치시기 위해, 여러분을 선교의 도구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펼치는 선교의 도구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 세상 모든 사람 앞에,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선교의 도구로 살겠다고, 새롭게 결단하는 성도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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