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죄에 대한 여러 가지 하나님의 메시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우리는 죄 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살인하지 말라. 그런데 우리는 살인했고, 미워하지 말라. 그런데 우리는 미워했습니다. 그것은 죄다. 그것은 아주 실감 있게 느껴져 옵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한 것. 그것도 죄라는 이런 인식은 상당히 빈약한 것처럼 보여집니다.그러나 성경에 약4:17절에 보시면 '사람 이 선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다 '. 마땅히 해야 할 줄 알면 서도 행하지 않은 것 그것도 죄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줄 알면 서도 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것 그 것은 바로 이웃 사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것 그것은 죄입니다.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것 그것이 어떤 죄일까요?
첫째 그것은 주님의 가장 커다란 계명을 불순종한 죄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 본문의 비유를 주께서 말씀하신 그 배경이 도대체 뭡니까? 그 배경은 25절부터 시작이 됩니다. 누가 복음 10장 25 절 부터 읽어 보시면'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을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 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 과 같이 사랑하라”그리고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29절에 다시 주님께 반문을 합니다. 내 이웃이 누굽니까? 그래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대답은 뭐예요?네 이웃이 누구냐? 네 이웃은 옆집에 사는 사람, 우리 앞에 사는 사람만이 내 이웃이 아니라는 거예요.내가 걸어가는 인생길 여리고 길처럼 내가 걸어가는 인생길에 내가 발견하게 된 피 흘려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 나의 사랑을 요구하고 내 관심을 요구하고 또 내 주목을 요구하고 내 도움을 요구하고, 내 앞에 누워있는 사람, 그는 누구이든 내 이웃일 수 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우리가 이웃을 사랑 한다면 어떻게 그 사랑은 또 표현 되어야 할까요?
우리가 예배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단어는가치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예배를 영어로는 워쉽(worship) 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워스(worth) 라는 단어 즉 가치가 있다 에서 나왔습니다.그러면 왜 예배를 드려요? 하나님은 예배를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창조자이신 하나님, 구속자이신 하나님, 섭리 자이신 하나님, 그분은 우리에게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고 예배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라고 믿으십니까? 그 하나님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우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만드는 것 이예요. 그리고 그 예배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다시 한 번 그것은 이웃에 대한 가치를 인식했을 때, 여러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때로는 그 사람들이 쓸모없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어요. 가치 없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 하실까요? 성경이 보는 인간의 가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믿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 하나님의 작품, 너무나 소중한 대상,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죽을 수밖에 없었던 고귀한 사랑의 대상인 인간. 그것이 인간의 가치예요.또 하나님은 우리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시고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런 이웃들의 가치를 인식 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이웃을 어떻게 존중히 여기지 않을 수 가 있겠습니까?어떤 의미에서도 이웃을 훼손하고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죄일 수밖에 없습니다.
셌째 발견된 이웃을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사랑해보자라 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을 들을 때 그 실천을 거부하는 내 속에서 올라오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변명이 있다면 그 변명이 어떤 변명입니까? 아니 이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한 두 사람이야? 또 내가 비록 한 사람을 돕는 다고하자 그렇다 고해서 세상이 달라집니까?또 나는 내 코도 석자인데 내 인생 에서 내가 경험하고 있는 아픔과 좌절이 많은데 나는 다른 사람까지 도 울 수 있는 에너지가 내 속에는 없다. 이런 변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본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주님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책임지라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에서 나에게 발견된 이웃, 내 발부리에 채인 사람, 지금 여기 피 흘려 누워있는 이 사람, 내 눈에 발견된 이 사람, 이 사람만이라도 책임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바꾸어 질건가? 나 한사람의 행동이 세상을 바꾸지 못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의 작은 노력, 작은 사랑마저도 완전히 사라진 세상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희망이 없는 세상입니다. 성경은 이 땅에서도 천국이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 사회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비록 내 작은 행동이 세상을 당장에 밝은 세상으로 바꿀 수 없다고 할지라도 설탕을 조금 가지고도 음식 맛이 달게 되듯이. 식초 조금가지고도 신 맛을 넬 수 있듯이. 비누 조금 가지고도 내 몸이 깨끗하게 할 수 있듯이. 햇볕을 조금만 쫴도 새싹 이 자라난답니다. 그 조금이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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