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는 사람들에게는 천한자요 그러나 하나님껜 귀한 자 이었습니다. 입다는 사람들에겐 버려진 자 이었지만 하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 이었습니다. 입다는 사람들이 택한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자니 그에게 힘을 주시는 자도 하나님이시오 이기게 하신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한 시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입다는 극한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믿음 붙들고 기도하니까, 미래를 준비하니까 그의 시대가 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허하게 들떠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믿음 붙들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걸음이 있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주여! 한계를 뛰어넘는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1. 길르앗 장로들의 올바른 생각
첫 번째는 입다라는 요인이 있었고 두 번째는 입다라는 사람을 픽업할 수 있었던 길르앗 장로들이였습니다. 10장 15절을 보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이렇게 회개하는 일부 무리가 있었다고 했지요.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아닙니다. 소수의 무리가 깨어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습니다. 그때는 이것이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11장에 넘어오니까 10장에서 이렇게 기도했던 무리들이 누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까? 바로 길르앗의 장로들입니다. 장로들이 깨닫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기도했더니 그들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올바른 생각을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그래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가운데 최고의 복은 생각의 축복입니다.사고의 축복! 올바르게 생각하면 올바른 길로 가게 되어 있고 잘못된 생각을 하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행동 이전에 중요한 것이 마음입니다.단점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밤낮 단점밖에 안 보입니다. 자기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생각이 변합니다. 항상 부정적인 생각만 하던 사람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긍정적인 생각, 부활의 근거를 둔 소망의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2.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을 관리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산제사 드려야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3절에 무슨 얘기가 나오는지 아십니까? 롬12장3절 보시겠습니다.“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우리는 그러지요. 생각은 자유라고! 그러나 생각은 자유가 아닙니다. 성경은 생각에까지도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얘기합니까?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쓸 데 없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불신앙인 줄 잘 모릅니다.그런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다가 망한 사람이 한둘입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장로들의 사고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평상시 같으면 자기들이 쫓아냈던 사생자 입다를 지도자로 쓸 것 같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열린 마음을 주셔서 입다를 찾아가게 하잖아요.
시각의 변화, 생각의 변화, 이런 것이 축복입니다.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는 길르앗 장로들의 생각을 확 뒤집어 놓습니다. 생각이 바뀌니까 일이 됩니다. 생각이 바뀌니까 대승리가 옵니다.
3. 믿음의 사람은 듣고 믿습니다.
사실 입다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여러 모양으로 말했지만,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실 때 입다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출애굽할 때 입다는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모압과 암몬을 돌아갈 때 입다는 없었습니다. 헤스본 왕 시혼과 전쟁을 할 때 거기에 없었습니다. 이 일들은 모두 300년이 훨씬 넘은 일들입니다. 그때 그 일을 눈으로 보고 경험한 사람들은 요단강을 넘어오기 전에 다 죽었습니다.
자기가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경험하지도 못한 사실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입다는 마치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기생 라합도 그렇습니다. 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소문을 40년 전에 들었을 때 그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멀리서 소문에 들려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랬어도 기생 라합은 그 이야기 속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출애굽을 실제로 경험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다 죽었어도 듣기만 했던 라합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얻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믿는 십자가 예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골고다 언덕에 있지 않았었고, 예수님께서 그때 부활하신 것을 직접 보지도 않았고, 도마처럼 손으로 만져본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 일이 우리에게 참소망을 주기 때문에 우리가 믿은 것입니다.문제가 터지면 해결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았던 이스라엘의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행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고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경험되어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자체가 곧 증명이기 때문입니다.
주소 : (61139)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대로13번길 3(각화동) 찬양권능교회 TEL : (062) 417-0191
Copyright ⓒ http://www.cgchurch.or.kr// All Rights Reserved. | Powered by jQuery 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