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고린도 교회가 나오는데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고린도 교회는 많은 은사를 받고, 말도 잘하고, 능력도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5절에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라고 합니다. "풍족하므로"라고 하는 것을 볼 때, 모든 부분을 잘 갖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 교회는 분쟁하는 교회였습니다.음행이 있던 교회였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싸움하며 소송하는 일로 세월을 보내는 교회였습니다. 하나도 본받을 내용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아픔을 가지고 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그런 모습이 아니라 아비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가 되어야 한다'고 권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외적인 것들에 집중하다보면, 우리의 자세가 스승의 자세로 머물러 있고, 자꾸만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권고하는 자세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만 스승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변화시키고 하나님께서 변화시키는 것은 아비와 같은 모습이 되어야 됩니다. 스승을 다툼을 일으켜도 아비는 생명을 낳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스승이 아니라 아비가 되어야 합니다. 아비가 되어야만 비로소 영혼은 변화시킵니다. 이곳에서 '스승', '아비'란 단어를 쓴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승'과 '아비'는 가르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은데,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입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생명과의 연관성입니다.
지식이 전수되는 거라면 일만 스승이 필요합니다.그러나 교회는 지식이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전수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아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교회 안에서 스승을 자처하는 만 명이나 되는 많은 자들아 너희들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짓 선지자들이 와서 사도 바울은 가짜 사도라고 주장할 때, 나는 너희들을 낳은 아비라는 것입니다.이것을 보면서 진정한 복음 안에서의 능력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스승이 많아지면 다툼이 일어납니다.서로 가르칠 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잘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나도 스승, 너도 스승. 스승끼리 모이면 싸웁니다. 그러나 아비가 모이면, 아비가 생겨나면 생명을 낳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필요한 것이 이러한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은 말이 아니라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본문고전4:20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이것을 비유하기 제일 좋은 것은 시체입니다. 시체는 눈, 코, 귀, 입 등이 다 있습니다. 시체가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법의학에서는 죽기 전에는 사람이고, 죽고 난 다음에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군대에서도 죽으면 이 사종 먹고 입는 것보다 뒤입니다. 살아 있을 때에 사람들을 데려가면 인신매매나 인신납치가 되지만, 사람이 죽고 난에 시신을 도둑질하는 것은 물건을 훔치는 일과 동일합니다.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껍데기는 똑같습니다. 차이는 생명이 있고, 없고 있습니다.
교회가 시체 같은 교회가 있답니다. 시체 같은 교회는 모양새는 다 갖추었습니다. 예배도 있고, 예배 형식도 있고, 조직도 있고, 모양도 있습니다. 남전도회, 여전도회, 청년부, 중등부, 고등부 다 있을 수 있습니다. 모양은 다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시체 같은 교회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성경공부와 기도의 능력이며 영적인 능력입니다.
한국의 교회들이 '능력 구하자고 기도 많이 하던 모습이 참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한국교회에서 놓쳤던 것은 영성을 놓쳤습니다. 영성을 놓쳐 가지고 밤낮 기도하고 이상하게 나가다 보니깐, 사람들이 지성화 작업으로 '이제는 성경 공부하자!'고 합니다. 이것이 나쁘진 않습니다. 균형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균형이 깨어져 가지고, 성경공부 많이 하자는 사람이나 제자 훈련 많이 하자는 사람 치고, 기도의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성경공부를 그렇게 한다는 이단들도 기도합디까? 그래서 생명을 낳는 아비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만약에 기독교의 문제가 설득의 문제였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논리 학원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셨습니다. 논리는 능력의 가지고 사람들을 변화시킬 때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한 거지! 논리를 통한 설득을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설득이 필요합니다.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후4:4절에 보면 보시겠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라고 합니다. 실제적으로 영적 싸움의 현장인 마귀가 강하게 역사 하는 곳을 가보면, 논리 싸움, 설득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능력 대결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능력으로 멸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혼미한 영과의 싸움입니다. 마귀를 멸하는 싸움입니다. 이 혼미한 싸움에서 내 자녀를 건저 내는 혼신의 싸움 그래서 생명을 낳는 아비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되는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능력을 가지고, 그 다음에서 능력 대결에서 승리하고 설득하고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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