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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일에 충성한자 마25:14-30 +
적은 일에 충성한자 마25:14-30 +
2020년 올 한해도 벌써 2/4분기에 들어섰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인이 돌아온 끝에 셈을 하지만 지혜로운 우리는 주인이 오기 전에 나는 맡은 달란트를 가지고 잘 사용하고 있는가. 우리들의 섬김을, 우리들의 봉사를, 우리들의 미션을, 사명을 점검해 봐야 할 중요한 시점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삶의 장, 사역의 장에서 우리의 봉사는 얼마나 충성 되었다고 결산 할 수가 있을까요?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성령의 열매를 가르치면서 일곱 번째 열매 가 바로 충성의 열매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성령을 체 험하고 주께서 친히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다스리신다면 마땅히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야 할 중요한 열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충성의 열매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충성은 한 달란트를 맡은 자처럼 온데간데없고 나의 중심대로 살고 있지 않는지 지금 우리의 맡은 달란트를 샘하러 주인이 오시기전에 우리의 자신을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본문의 비유를 통해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무엇이 이 칭찬을 받았던 종들로 하여금 그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전 일생을 걸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을 결산하는 그날 여러분과 제가 충성된 종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반드시 대답해야 할 중요한 질문입니다. 무엇이 여러분과 저를 충성된 종으로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맡은 자의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청지기 의식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죠. 본문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그들에게 자기 소유를 어떻게 맡겼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종들 편에서는 주인이 맡겨 주신 것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맡은 자들. 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주인이 맡겨 주었습니다.
그들은 관리하는 관리자에 불과했습니다. 요즈음 말로 매니저에 불과했습니다. 좀 더 고대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그 것이 청지기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맡았느냐 그것은 오늘 본문의 중요한 포인트는 절대로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맡은 것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느냐 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자와는 다르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적게 받았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을까요?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그에게 맡겨진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은 자는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죠. 그러나 본문을 푸는데 19절의 말씀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절을 보시겠습니다.“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주인이 돌아오는데 성경은 오랜 후에 돌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혹시 한 달란트 맡았던 사람은 이런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주인이 떠나간 후에 오랜 동안 돌아오지 않으니까 아마도 주인은 영 돌아오지 않을지 몰라. 그리고 맡겨주신 것에 관해서 전혀 책임 의식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이 매우 강조되어야 할, 우리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25장의 한 부분이고요 마태복음 25장 전체를 읽어 보십시오. 또 선행하는 장 마태복음 24장을 읽어 보시면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한 중요한 신학적인 주제, 기독교 교리의 가장 중요한 주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사건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기독교인들이라면 주님의 재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두뇌로 고백하는 것과 마음으로 믿고 그렇게 사는 것은 다릅니다.
정말 주님이 오실 것을, 다시 역사와 시간 속에 그분이 돌아오신다, 이 사실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사십니까? 그분이 다시 돌아오실 것이고 따라서 내가 살아왔던 삶, 또 인류의 모든 역사는 그분 앞에서 반드시 심판되고 결산될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그 사실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달라지지 않을까요?
우리 기독교 신앙을 가리켜서 우리는 종말론적 신앙이라 말합니다. 종말론적 신앙이란 말은 세상이 끝난다. 그래서 아우성을 치고 집을 떠나고 가정을 떠나고 직장을 등지고 산으로 올라가든지 기도원으로 올라간다든지 그것이 종말론적 신앙이 아닙니다. 이 종말론적 신앙의 본질은 언제나 역사 속에 다시 오시는 예수님, 그리고 역사를 마침내 심판하고 결산할 예수님 앞에서 언제 역사가 종말이 와도, 내개인의 종말이 언제 와도 그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준비되어져야 할 삶,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신앙의 본질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충성된 종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두뇌로 고백하는 것과 마음으로 믿고 사는 삶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시 오시는 주님을 우리가 그것을 참으로 믿는다면 오늘 이 하루하루의 삶은 그분의 심판대 앞에서 드러나야 할 우리의 삶의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오늘을 어떻게 사십니까? 어떤 환경에서든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자신들을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첫 사랑을 잃어버린 신앙이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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