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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기도. 출15:22-27
모세의기도. 출15:22-27 +
오늘 본문에 출15장24절을 보시면 백성이 춤을 멈추고 모세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원망하며, 한순간 노래를 그치고 그 속에서 탄식과 신음소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고통이 찾아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지나 후 꼭 사흘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니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지 사흘 만에 상황이 바뀌 었습니다. 왜냐하면 물을 얻지 못했어요. 광야에서 물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막에서 생명과도 같은 물을 얻지 못하고 목이 타는 갈증이 그들을 지금 괴롭히고 있습니다.
조금 전 까지 노래하고 춤추면서 기뻐했든 이 백성들이 불과 사흘 만에 지금 탄식하고 고통하고 신음하면서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인생의 그림이 아닌가요?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의 노래를 빼앗아 가는 이런 신음과 고통을 경험할 때 우리의 춤 동작을 멈추게 하고 우리의 가슴을 치게 만드는 이런 고통이 우리의 삶에 다가올 때, 이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고통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1. 본문은 가르치기를 이 고통은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가르칩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이런 반문을 하실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내가 보니까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자녀인 우리를 나를 시험하신다고 말하십니까? 약1: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아무도 사람들을 시험하지 않는다.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영어성경으로 그 단어를 읽어보면 템테이션(temptation) 또는 템트(Tempt)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유혹한다. 이런 뜻도 있지만 본래 이것은 파괴적 의미의 시험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파괴적 의도를 가지고는 우리를 결코 시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른 의도로 우리를 시험할 수가 있습니다. 교육적인 의도로 “그래도 하나님을 믿나”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든지 테스트(Test)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처럼.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오늘 본문의 사건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시험하셨을까요? 오늘 출애굽기15장1절이 무엇으로 시작했습니까? 노래로, 춤으로, 왜 노래로 시작했습니까? 왜 14장에 홍해바다 앞에서 모두 다 죽을 줄 알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홍해바다를 갈라주었습니다. 할렐루야!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갔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 것입니다. 어찌 춤추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죽음 가운데서 살아났고, 원수들이 물속에 장사 지내고,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던 이 백성들이 지금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지금 이런 사랑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학자 가운데 자주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 가운데는 두 분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이렇게 두 분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축복을 경험했기 때문에 내가 신앙을 가진 것이 나에게 유리하고, 나에게 훨씬 더 이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의 신앙생활의 출발은 어쩌면 이런 동기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신학자들이 강조하고 싶어 했던 것은 이것입니다. 그 차원에서 우리의 신앙이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런 사랑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 이 사막에서도 찬양할 수 있니? 이 광야에서도 찬양할 수 있니? 그리고 메마를 광야에서도 마라의 쓴 물 앞에서도 나를 향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니? 이것이 하나님의 테스트입니다.
3. 고통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고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시험이요. 고통의 의미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아니 아무리 고통이 소중한 어떤 가르침을 준다고 고통 그 자체가 어떻게 축복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래요 첫째 이유는 대부분 고통이라는 것은 우리를 또 다른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고통은 결코 고통 그 자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요. 우리가 고통 앞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반응한다면 고통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홍해가 나옵니다. 요단강이 나옵니다, 만나가, 생수가 메추라기가, 아니 통에 가루가 끊이지 않습니다.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습니다. 기근이 멈춥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섭니다. 할렐루야!
경험하고 나서 모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부르짖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무가지 하나를 던졌더니 그 쓴 물이 변하여 단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단물이 얼마나 대단한 맛이었을까요? 설탕 물 꿀물 그런데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해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금 전에 쓴 물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실 수 없고 토해 냈기 때문에 그래서 맛본 생수가 얼마나 더 감격적인 단 물이였을까요? 고통은 또 다른 축복을 그리고 또 다른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인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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