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현재 위치 : 커뮤니티 > 목회칼럼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15:1-8 +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15:1-8 +
우리 민족에게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종교는 뭐니 뭐니 해도. 불교입니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즉 주후 372년에 이땅에 전래된 이래 불교는 우리나라 역사 학문 문화 예술 의식의 근간을 이루어 왔습니다. 이처럼 지난 1654년 동안 모든 면에 걸쳐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불교의 특성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불교는 자력종교입니다. 자력종교란 이 세계의 근원이 그 자체에 이외는 다른 원인과 동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오직 자기 업으로 태어났을 뿐 다른 간섭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교는? 우주 만물과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구원해야만 한다는 자력종교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을 구원해줄 수 있는 초월자는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신이 되어 구원받아야 합니다. 맞는다고 하십시다. 그렀다면 불교계에 석가와 같은 사람은 몇 명이나 있습니까? 이에 비하여 기독교는 철저한 타력 종교입니다. 이 세상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계시기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분이 또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바로 그분의 능력과 도우심을 힘입어 인간은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모든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일 수 있습니다.
1. 기독교는 철저한 타력종교다.
이처럼 기독교는 철저한 타력 종교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유혹이 난무하는 속세를 피해 자신을 외딴 곳에 격리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이 세상을 밝고 빛난 세상으로 일구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자들은 자력으로 깨달아 스스로 부처가 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는 그 피눈물 나는 정진 잿빛 장삼의 일식 삼찬으로 만족하는 그 청빈의 삶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는 길이 없습니다.
이처럼 자기 한계에 부딪혀 자기 절망으로 인해 몸부림을 쳤을 수많은 이름 모를 스님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긍휼한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안타까운 마음은 곧 하나님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됩니다. 나를 초월하여 나를 구원해 주시는 그분 우리는 그분을 알지도 못했던 그분이 나를 불러주시고 그 분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은총을 주시지 않았던들 위대한 타력구원에 길로 인도해 주시지 않았던들 오늘 나 역시 돋아나는 흰머리 하나 막아내지 못할 이 알량한 능력으로 나를 구원하기 위해 끝도 없는 고행의 길을 헤매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2.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본문 요한복음 15:5절 말씀에“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에 제자들을 그 가지에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지된 우리는 늘 포도나무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포도나무는 아무렇게나 휘어져 자라기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전혀 쓸모가 없어 오직 땔감으로 불살라질 뿐인 입니다. 우리가 정말 진리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이 무슨 의미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본문은 단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열매를 맺어야 할 가지의 의무만을 강조한다면 기독교 역시 자력종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포도나무 묘목 한 그루가 있다고 합시다. 단지 크기만 작을 뿐 어엿이 줄기와 가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묘목을 향해 명령을 내립니다. 지금부터 포도나무는 가지 안에 가지는 포도나무 안에 거하라. 그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라. 그 명령을 들은 포도나무와 가지가 노력한다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기를 쓰고 정진한다고 결실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오늘 본문을 우리가 정말 바르게 이해하고 우리 자신이 참된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기 위해서는. 본문1절의 말씀을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3.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이스라엘은 황무지가 많은지라 개간 가능한 평지는 주로 농작물 재배에 이용되었고 포도는 대개 산지에 일구어져 있습니다. 농부는 포도 묘목을 심기 전에 먼저 면밀한 정지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크고 작은 돌들을 치우고 땀 흘려 땅을 갈아야만 합니다. 그 후 2~3미터 간격으로 묘목을 심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이스라엘의 흔했던 여우나 돼지로부터 포도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돌 벽이나 나무 울타리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포도원 가장 높은 곳에 포도원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망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농부는 그 망대 위에서 포도원을 내려다보면서 쓰러진 나무를 세워주고 해충을 쫓아내고 거름을 주는 등 온갖 정성을 다 쏟습니다. 결실하기까지 농부의 발걸음은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열매는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이래서 생겨났습니다. 이처럼 포도원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농부 없이는 포도나무는 결코 자력으로는 포도나무일 수가 없고 그 가지 스스로 절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포도나무 즉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심어주셨기에.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가지로 그분에게 접붙여 주셨기에. 하나님께서 진리로 포도원을 일구어 주셨기에. 하나님께서 진리로 울타리를 쳐 주셨기에. 하나님께서 진리로 거름을 주셨기에.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주시기에. 오직 그분의 은혜로 그 분의 능력에 의해 우리는 진리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가리켜 참된 구원의 종교요 은혜의 종교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멘!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