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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초월한 축복. 창26:12-18 +
환경을 초월한 축복. 창26:12-18 +
인생에서 많은 사람들은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함께 현실을 직시하는 통찰력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앞을 내다보는 것을 선견이라 하며. 동시에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눈을 정견이라 합니다. 21세기를 모두 변화의 시대라 말합니다. 그런 까닭에 21세기의 지도자는 앞을 내다보는 눈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의 변화에 빨리 대처하는 능력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선견하고 정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함께 보는 것입니다. 현실을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직시하는 사람과 현실을 하나님과 함께 직시하는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삭은 블레셋에 머물 때 현실을 직시했을 뿐 아니라 환경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 이삭은 하나님께100배의 축복을 받습니다.
1. 환경을 초월한 축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방이 막힌 것 같고 절망적인 환경이 우리를 엄습한 것 같을 때에도 하늘은 열려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고요히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임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모든 손길이 다 끊어져도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면 소망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역전 될 수 있습니다. 이삭은 바로 이 역전의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갈3:2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받았다는 완료형입니까? 진행형입니까? 진행형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 아브라함의 자손들 중에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눅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구원받는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믿으신 분은 아멘 ! 그렇습니다. 믿는 자, 구원받는 자가 이 시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 블레셋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이삭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환경을 초월한 이 땅의 형통한 백배의 축복은 우리의 것입니다 내 것입니다. 아멘! 아멘!
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이삭은 환경을 따라 살지 안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았습니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에게 배웠습니다. 아브라함이 형통했던 것은 그는 언제 세상을 바라보지 안했습니다. 환경을 바라보지 안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환경을 초월하시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법칙을 사용해야 합니다. 맨날 없는 것 안되는 것 만보지 말고 있는 것 되는 것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없는 것 안되는것만 바라보니까 남이 잘되면 시기나 하고 질투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하는 언어를 통하여 환경을 초월하는 복을 받습니다. 말씀은 미래를 창조하는 재료라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언어는 씨앗과 같습니다. 말씀을 심으면 곧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는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말을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능력으로 믿었습니다. 말씀이 나가서 사역하고, 말씀이 치유하고, 아멘! 하나님은 사55: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시34:8을 보시면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현실의 노예가 되지 마시고 사람들의 말에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현실의 노예가 되니까? 심을 것도 없는데. 내 코가 석자인데 심으라고 한다고 말합니다. 바라봄의 법칙 안에 들어오면 심을게 얼마나 많은데요.
3. 인생은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고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습니다.
마라의 쓴 물이 단물이 된 것처럼, 노예였던 요셉이 국무총리가 된 것처럼,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이 그 나라의 제이인자가 된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역전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로 가능합니다. 끈질긴 기도, 변함없는 기도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예배로 붙드십시오. 하나님을 붙드시면 시대를 초월해서 형통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기도로 붙드십시오. 기도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자신이 변화 받습니다. 기도는 우주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원리요 법칙입니다.
여러분의 인생길에 고난이 없을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고난은 외예가 없습니다. 고난이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마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분명하고 확실한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고난 중에 춤을 추고 역경 중에 노래할 수 있도록 축복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실 때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도 형통했습니다. 감옥에서도 형통했습니다. 고통 중에도, 역경 중에도 문제속에서도 형통했습니다. 성공해서도 형통했습니다. 애굽의 궁중에서도 형통했습니다. 요셉에게는 형통이 마치 자석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형통한자가 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왜 환경을 초월해서 축복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 즉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형통치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존재 목적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목적입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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