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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도회 | 새로 발견된 이집트 석비는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왕이 실존했음을 증거한다.
새로 발견된 이집트 석비는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왕이 실존했음을 증거한다.
(Newly discovered Egyptian relic witnesses to biblical king)
by Gavin Cox
최근 이집트의 한 농부의 밭에서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는,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는 커다란 사암 석판(Slab of Sandstone)이 발굴되었다.[1] 이 석판은 길이 230cm, 너비 103cm, 두께 45cm의 것으로[2], 수에즈 운하의 서안(西岸)에 있는 이스마일리아(Ismailia) 마을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이스마일리아는 필자가 1999년 이집트의 내진(耐震) 산업체에 근무하던 중 우연히 방문한 곳이기도 함).
.약 2,6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비(stela)가 이집트 이스마일리아 시 근처의 한 농부의 밭에서 발견되었다. 거기에는 15줄의 상형문자 비문(hieroglyphic writtings)들이 새겨져 있었다. <BAR/ Egyptian Antiquities Ministry>
석비(stela or stele)로 말해지는 이 석판은 와히브레 하아이브레(Wahibre Haaibre)라 불리는, 이집트 제26왕조의 파라오(pharaoh, 바로)에게 헌정된 것이다.(아래의 '파라오의 이름' 박스글 참조). 고고학자들은 이 파라오를 예레미야 44:30절에서 ‘호브라(Hophra, חָפְרַע)’로 언급된 이집트 왕으로 인정하고 있다.[3] 또한 그리스인들, 특히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 기원전 484~425년경)와 디오도로스(Diodorus 기원전 90~30년경)에 의해서, 와히브레는 아프리에스(Apries)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3세기 초의 이집트인 역사가였던 마네토(Manetho)는 이 왕을 그리스어는 Uaphris로, 이집트어로는 Waḥibprê로 표기했다.[4]
학자들은 이 다른 이름들이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이 이름들은 동일하게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이집트 학자들은 성경의 기자(biblical writers)들이 파라오의 다양하고 긴 공식 명칭을 생략하고, 자주 축약형을 사용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호브라(Hophra)에게도 행해졌는데, 이에 따라 그의 이집트식 이름이 히브리 문자로 음역되었고, 약간 변경되었다고 보는 것이다(아래 박스글 참조). 이것은 히브리어로 두 단어의 조합처럼 들리는 그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재치있게 표현한 것일 수 있다: 1) ‘hepha’는 비탄한 상태, 특별히 처형 전에 천으로 머리를 덮는 것(cover/veil one’s head)을 의미하고 2) ‘ra’는 악(evil)을 의미한다.[6] 결합된 단어는 '처형을 당하기 전에 악한 자의 머리를 가리다'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호브라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 문맥과 잘 어울린다. 또 다른 언어적 유희는 호브라(Hophra)의 이름에 들어있는 ‘ra’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히브리어로 '악마'를 뜻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이집트의 태양신을 나타낸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파라오 아프리에스(Pharaoh Apries)의 스핑크스, 카일루스 백작 소장품, 현재 루브르 박물관 소장. <Ram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성경의 이야기와 역사.
BC 589년에서 570년 사이에 통치했을 가능성이 높은 호브라는 유다 왕 시드기야(Zedekiah)와 동시대의 왕이었다.[7] 호브라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예루살렘이 약탈되기 전인, 이스라엘과 유다의 분열왕국이 끝나는 시대에 이집트를 통치했다.
호브라는 예레미야서에 그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보라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그의 원수 곧 그의 생명을 찾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긴 것 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 하셨느니라”(예레미야 44:30)
선지자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 2세(Nebuchadnezzar II)의 바빌로니아 군대가 예루살렘를 포위했다가, 호브라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방어하기 위해 왔을 때, 어떻게 철수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예레미야 37:5).
그러나 예레미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느부갓네살 2세의 철수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 위해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예레미야 37:7~8).
하나님은 또한 유다 성읍들은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예레미야 34:2-22). 바빌로니아 연대기(Babylonian chronicles)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18개월에 걸친 오랜 포위 공격 후에, BC 587년 또는 586년에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8] 그러나 느브갓네살 2세는 호브라를 죽이지 않았는데, 예레미야의 예언에 따르면 오히려 호브라의 내부 적들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집트와 그리스 자료의 증거에 따르면, 이집트에 내전이 있었고, 그 기간 동안 호브라와 그의 그리스 용병 군대는 해외로 도망갔다가, 나중에 이집트로 돌아와 아마시스(Amasis, Ahmose II)의 손에 살해당했다. 아마시스는 BC 570~526년 사이의 통치자이다.[9] 따라서 예레미야서의 기록은 성경 밖의 외부 자료들과 함께, 호브라의 불운했던 이스라엘 여정의 세부 사항들을 채워 준다(예레미야 37:7~8).
.석비가 발견된 곳 근처의 도시 이스마일리아.
결론
이스마일리아에서 새로 발견된 이 석비는 성경에 나오는 파라오(바로) 호브라에게 헌정된 것으로, 그의 존재를 확증해 주는 성경 외적의 중요한 증거의 한 조각이다. 그리스와 이집트의 자료에 따르면, 호브라는 내부 적들의 손에 죽었으며, 바빌로니아 왕이 죽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성경 밖의 자료들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이 사실임을 확증해 준다.
학자들은 여전히 석비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호브라와 예루살렘 왕 시드기야와 느부갓네살 2세와의 상호관계나, 아마시스의 손에 의한 호브라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추가한다면, ‘성서고고학’ 분야에서 하나의 빅 뉴스를 제공할 것이다.
추천 -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4268001&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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