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 시 23:4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 아멘 하고 또 은혜도 받는다. 그런데 정말로 그것을 원할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를 붙잡아 주시고 인도하시는 것은 좋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때로는 아주 어려운 데로 인도하실 때도 있는데 그것은 어떤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라고 쓰여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차단해 주신다고 쓰여 있지 않다. 우리는 이런 부분이 상당히 섭섭하다. 능력도 있으시니 좀 알아서 차단해주시고 알아서 해주시면 좋겠는데 말이다. 이 구절에서 핵심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니라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다.
우리의 영적 상태가 가장 좋은 시기는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야만 내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때인데, 우리가 그것을 간구하는 때는 대부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시간이다.
다윗은 훗날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당대의 강력한 왕이 되지만, 시편 23편은 그가 왕이 되고 나서 쓴 시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도망을 다니며 그의 목숨을 연명할 때 도망가다 도망가다 갈 곳이 없어 골리앗의 고향까지 들어가서 침을 질질 흘리며 최악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고백한 시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윗은 안다. 골짜기의 깊이와 어두움과 절망함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고백한다. 그 골짜기 안에서 하나님만 함께하신다면 해를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윗은 광야의 그 어려움 속에서도 사울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자기 목숨이 위태로울 때, 자기 손으로 사울을 두 번씩이나 해결할 수 있었는데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해결하신다며 사울에게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다윗이 언제 죄를 짓는가? 왕이 되었을 때이다.
왕이 되어 평탄한 시간을 맞이하고, 자신이 나가지 않아도 전쟁에 이기고, 낮에 한숨 잘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되었을 때 왕궁 옥상에서 슬슬 걷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넘어져서 죄악에 무릎을 꿇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왕궁 옥상에서 민가의 그 여인이 잘 보였겠는가. 목욕하는 것 같기는 한데 잘 보여서 “우와, 진짜 예쁘다” 했겠는가. 그렇지 않은데도 그 정도만 해도 확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위험할 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그 골짜기에서는 하나님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양이 목자와 멀어질 때를
늑대는 노린다.
목자 곁에 있는 양이
가장 안전합니다.
지금 고통 속에 있는가?
아무에게도 말 못 할 그런 아픔 속에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은 괜찮다.
지금은 오히려 괜찮다.
우리가 가장 위험할 때는 내가 왕이 되었을 때이다. 여호와가 목자가 아니고 내가 왕이고 목자이고 주인 되었을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평탄할 때 조심하라. 일들이 잘될 때 조심하라. 그리고 오늘도 양으로 살아가는지 확인하라. 양이 목자가 되려고 하면 나뿐만 아니라 양의 무리가 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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